[기자수첩] 보호자 두 번 울리는 발달치료센터 갑질
프라임경제 | 2025-06-18 12:07:33
프라임경제 | 2025-06-18 12:07:33
[프라임경제] 문재인 정부 시절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정책'이 소개됐을 때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청와대 앞에선 이 정책에 대한 규탄시위가 열렸는데, 시위 주체는 뜻밖에도 발달장애인 보호자들이었다.
누구 보다 발달장애인 보호자들이 이 정책을 반길 줄 알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정책을 세운 마음은 고맙지만,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현상을 제대로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섰다"는 게 당시 보호자들의 항변이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장애인은 264만1896명. 그 중 발달장애인은 27만2524명에 달한다. 장애 등급을 받지 않았지만 '발달 경계선'에 있는 이들까지 합치면 족히 50만~60만 명은 될 것이란 추산도 있다. 발달장애인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반해 케어시스템과 치료기관은 늘 부족하다.
발달장애는 어느 특정 질환 또는 장애를 지칭한다기 보다 △사회적 관계 △의사소통 △인지 발달의 지연과 이상의 특징을 보이며, 제 나이에 맞게 발달하지 못한 상태를 모두 일컫는다.
발달장애는 조기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와 상담해 적절한 시기에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기 진단은 선진국 수준이지만 국가 '바우처'로 운영되는 치료 기관은 부족하다.
바우처는 보건복지부에서 장애아동을 양육하는 가정의 재활과 돌봄으로 인한 양육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마련된 시스템으로, 바우처를 활용할 수 있는 병원이나 발달치료센터(이하 센터)는 각 지방정부가 관리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보호자에게 이 바우처 혜택은 매우 중요하다. 아이의 발달장애 증세를 발견하고 인지해서 처음 치료나 관리를 맡기는 시기라는 점에서, 한없이 예민할 수밖에 없는 보호자 입장에서는 정부의 전문적 케어시스템과 지원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하다.
하지만 바우처를 활용하지 못하는 병원이나 센터도 많다. 이곳에선 체계적 지원이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 있는데, 발달장애인 보호자가 행정상 피해를 보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센터는 그 성격상 병원도 학원도 아닌 중간단계 쯤으로 볼 수 있는데, 발달치료 자격증이 있다면 누구나 설립할 수 있다. 때문에 치료를 위한 수업료 규정이나 보강수업, 환불에 대한 부분을 자체 규정으로 만들 수 있는데, 이런 점 때문에 발달장애인 보호자들이 피해를 입기도 한다.
보통 학원의 경우 부득이하게 아이가 수업에 빠질 경우 언제든 보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센터는 자체 규정으로 당월 결석의 경우 한 번은 보강해 주지만 두 번 결석하면 1회만 보강을 해 주고, 이월 되지 않는다. 또 센터는 학원과 동일하게 한 달 수업료를 먼저 결제해야 하는데, 1회 수업 비용이 평균 7만원 대에 형성돼 있다. 문제는 당일 결석의 경우 이 수업료가 차감되고 보강도 진행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환불 규정 역시 보호자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한 달 비용을 선결제 했지만 1회 수업을 받아 본 후 수업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아이가 적응을 못해 환불을 하려 해도 △아동의 질병으로 인한 병원 입원 △이사 △담당 치료사 퇴사 등의 사유로만 환불을 받을 수 있다.
보호자에게 매우 불리한 조건이지만, 보호자는 센터의 기준에 따를 수밖에 없다. 아이의 치료와 교육을 생각하면, 다른 선택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발달장애를 치료하는 센터의 숫자가 너무 적고, 옮기더라도 대기를 오랫동안 해야 하는데 그동안 아이를 치료할 수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센터의 운영 규칙이 '갑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상황 개선을 위해선 정부의 지원과 관심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의 경우 '장애인교육법'을 통해 발달장애 아동이 차별 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이 법의 특징은 모든 장애아동에게 무료로 적절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 독일은 발달장애 아동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성인이 돼 자립할 때까지 전 생애주기에 걸쳐 지속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스웨덴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일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서구의 선진 체계가 우리나라에 정착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발달장애 아동에 대한 치료와 관리가 가장 필요한 시기에 보호자가 센터의 갑질 때문에 속앓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 어느 때 보다 힘든 시기의 보호자들이다. 이들은 누구나 아이가 전문 의료기관에서의 조기진단, 초기교육, 치료코디네이팅 등의 혜택을 입길 바란다. 하지만 이런 서비스가 보편적이지 않기 때문에 보호자들은 센터의 도움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의료기관과 센터의 서비스 차이가 좁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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