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발제조업 근로자의 담관암,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프라임경제 | 2025-06-20 10:35:15
프라임경제 | 2025-06-20 10:35:15
[프라임경제] 최근 한 신발 제조업체에서 40년 가까이 근무한 근로자의 유족으로부터 근로자가 담관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에 사망했다는 상담이 접수됐다.
유족들이 가장 먼저 한 질문은 "이 병이 과연 아버지가 했던 일과 관련이 있을까요?"였다. 많은 이들이 암을 개인의 건강 문제로 여기지만, 일부 암은 명백한 직업적 원인에서 비롯된다. 특히 신발 제조업 종사자들의 담관암 발병 가능성은 산업보건 측면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담관암은 간에서 분비된 담즙이 장으로 흘러가는 통로인 담관에서 발생하는 암이다. 전체 암 중에서는 드물지만 진단 시기가 늦어 예후가 나쁘다. 문제는 이 담관암이 특정 유해화학물질, 특히 염소계 유기용제나 방향족 탄화수소계 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근로자들에게서 다수 보고되고 있다는 점이다.
신발 제조업은 단순한 조립공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접착제, 세척제, 가죽 처리제 등 다양한 화학물질을 다룬다. 이 중 상당수가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지정한 1군 발암물질로 분류된다. 톨루엔, 벤젠, 트리클로로에틸렌(TCE), 사염화탄소 등이 대표적인 예다.
문제는 과거 많은 현장에서 △환기시설 부족 △보호구 미착용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부재 등의 상황 속에서 이러한 물질들이 사용됐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일본 오사카의 한 인쇄업체에서는 TCE에 노출된 수십 명의 근로자들이 담관암에 집단으로 걸리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를 계기로 염소계 유기용제와 담관암의 인과관계가 국제적으로 조명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쇄업, 금속표면처리업, 신발 제조업 등 유사한 환경의 산업에서 직업성 담관암 의심 사례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그렇다면 신발 제조업 근로자가 담관암에 걸렸을 때, 이를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성은 존재한다. 물론 담관암은 발병률이 낮고, B형 간염, 음주 등 다양한 개인 건강요인과의 감별이 필요해 입증이 쉽지 않다. 하지만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반복적 노출 이력 △유사한 질환을 앓은 동료의 존재 △작업환경에 대한 자료 확보 등이 이뤄진다면, 직업병으로서의 인과관계 입증이 가능하다.
실제 고용노동부는 최근 직업성 암 질환 인정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일부 담관암 사례는 산재로 인정되기도 했다. 특히 유기용제와의 관련성이 객관적으로 입증되는 작업장의 경우,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문제는 많은 근로자들과 가족들이 암 진단을 받은 이후에도 자신이 했던 일이 병의 원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직업병 역학조사 제도나 산재신청 절차를 알지 못한 채 개인적인 질병으로 처리되곤 한다. 이는 사회적 보호망의 사각지대다.
노무사로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암이라는 결과만 보지 말고, 그 원인을 산업환경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오랜 기간 신발 제조공정에 종사했던 근로자가 담관암에 걸렸다면, 단순한 우연으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바로 이런 경우를 대비해 만들어진 제도다. 이제는 '질병'이 아니라 '노동의 대가'로 이 문제를 바라볼 시점이다.

이시각 주요뉴스
이시각 포토뉴스


- 한줄 의견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