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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양육비 선지급제, 뼈아픈 현실
파이낸셜뉴스 | 2025-07-03 20:23:04
최은솔 사회부
최은솔 사회부
올 하반기 주목받는 제도 중 하나는 '양육비 선지급제'다. 국가가 양육비를 먼저 지급한 뒤, 추후 비양육 부모에게 비용을 구상하는 방식이다. 지난 1일 시행된 첫날에만 약 500건의 신청이 몰렸다. 법원의 지급명령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부모, 이른바 '배드 페어런츠'를 더는 기다릴 수 없었던 이들에게는 간절한 대책이었다.

이 제도가 주목받는 배경엔 현행 제재의 실효성 부족이라는 뼈아픈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선지급 대상은 소득 수준이 낮고, 3개월 이상 양육비를 받지 못한 가정의 미성년 자녀. 이 같은 대상자가 1만3000여명에 이른다. 지급명령을 받아도 양육비를 받기 위해선 못 받았다는 점을 기나긴 재판 중에 증명해야 하는 복잡한 절차가 뒤따른다.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제재는 크게 법적·행정적 조치로 나뉜다. 법원은 양육비 지급명령을 어긴 사람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고, 3회 이상 불이행하면 감치명령(30일 이내 구금)을 내릴 수 있다. 그마저도 따르지 않으면 1년 이하 징역이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러나 실효성은 낮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접수한 감치명령 신청 중 법원이 인용한 비율은 62.5%에 그쳤고, 인용되더라도 실제 집행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감치명령이 내려져도 "한 달 다녀오면 그만"이라며 버티는 사례도 적지 않다.

형사처벌 역시 약하다. 지난달 창원지법 2심에서 징역 3개월에 집행유예를 받은 A씨는 6년 전 지급명령을 받고도 수년간 양육비를 미지급했다. 2심 재판 중 일부를 지급하고 향후 분할납부 의사를 밝히자 법원은 이를 참작했다. 이런 판단이 반복되면 처벌의 실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행정제재도 마찬가지다. 운전면허 정지, 출국금지, 명단 공개 등의 조치가 있으나 무시하거나 회피할 가능성도 있다. 생업과 직결된 면허정지 조치조차 실효를 담보하긴 어렵다. 양육비 채무자가 불이익을 감수하며 버티는 동안 피해자는 지속적으로 생계를 위협받는다.

이런 맥락에서 양육비 선지급제는 분명 반가운 제도다. 그러나 이마저도 수개월간 양육비를 받지 못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신청이 가능하다. 애초에 강제집행이 효과적이었다면, 굳이 이런 제도가 필요했을까.

현장의 변호사들조차 "실효성 없는 제재만 두고 언제까지 기다리란 말이냐"고 한다. 선지급제가 첫걸음이라면, 다음은 법적·행정적 제재의 강제력을 높이는 일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제도들이 '버티는 사람'에게 유리했다면, 앞으로는 '아이를 키우는 사람'에게 유리한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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